볕뉘
written by. 반록
다친 건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 물론 본인의 의도로 몸을 다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조직 간의 항쟁에서 죽을 각오로 싸워도 죽을 수는 없었다. 칼에 배를 찔린 상태에서 야구방망이로 맞았을 때, 장료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앞이 점멸하는 와중에도 장료는 제가 들고 있는 쇠파이프를 놓지 않고 상대를 향해 휘둘렀다. 아군이면 알아서 피하고 적군이면 맞길 바라며 장료는 제 앞에 있는 사람들을 가릴 것 없이 파이프를 휘두르며 뒤로 물러서다가 무언가에 부딪쳤다.
등이 닿은 게 벽이 아닌지 조금 푹신하고 뜨듯함까지 느껴졌다. 적인지 아군인지도 모를 상황에 장료는 눈을 부릅뜨며 쇠파이프를 꽉 붙잡았다.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려 했으나, 등 뒤에서 나온 손이 허리를 끌어안고 당겼다. 순간 다리가 풀려 장료는 당황했다. 공격당할 거라는 생각에 절로 등골이 오싹했으나 그 전에 눈가에 무언가 얹어졌다.
눈가를 덮고 있는 게 누군가의 손이라는 걸 알아챈 건 콧잔등에 옷자락이 닿았을 때였다. 눈가에 닿는 감촉이 매끄러운 걸 보면 손이 바로 닿은 게 아니라 손수건 따위를 덮고 그 위에 손을 얹은 것 같았다.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고 뜨거운 손바닥이 살짝 무게가 느껴질 정도로만 얹어진 상태였기에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손에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빼앗으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새 등을 기댄 채 장료는 어딘가에 앉아있었다. 의식이 깜빡깜빡했다. 햇볕에 바싹 마른 것 같은 풀 냄새가 났다. 오래 방치되어 눅눅하고 축축한 창고에서 햇볕 냄새가 난다는 게 기묘했다. 장료는 머리를 맞은 탓에 중추신경이 맛이 가버려 후각 세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장료는 칼에 찔린 복부 위로도 무언가 얹어져 꾹 누르는 움직임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통증이 의식을 살렸다. 소음 속에 고요함이 느껴졌다. 의식이 묘하게 부유하는 느낌에 장료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한번 긴장이 풀려버린 손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누군가 크게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그게 어떤 말인지는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오직 저를 끌어안은 품과 햇볕에 바싹 마른 풀 냄새가 몸을 안정시켰다. 손에 쥐고 있던 쇠파이프가 떨어지며 소리를 낸 것을 끝으로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의식이 끊겼다.
*
“정신이 좀 들어?”
아득히 멀어졌던 의식이 부유하다가 떠올랐을 때는 흰 천장이 보였다. 눈앞에서 손을 흔드는 남자의 얼굴이 잔뜩 번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다는 것과 목소리만으로 장료는 그게 누구인지 알았다.
“……돌팔이.”
“우리 토끼 군은 약 필요 없지?”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고 입에 비타스틱을 문 채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하는 말에 장료는 그제야 밀려오는 통증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입에서 신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배가 아팠고 머리가 욱신거렸다. 장료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제 몸뚱이를 바라보았다. 입고 있던 옷은 온데간데없이 배에 붕대만 칭칭 감겨 있었는데 소독약 냄새가 물씬 풍겼다.
조직에서 뒤를 봐주는 만큼 협력해주는 의사 진궁이 있다는 건 제 목숨이 아직 성하다는 것이었다.
“이겼어여?”
“내가 어찌 알아? 그쪽 대장이 살려놓으라고 던져두고 간걸.”
심드렁한 대꾸에 장료는 몸을 뒤척거리며 통증이 덜한 자세를 찾으려고 했으나, 움직이는 만큼 통증이 더 심해졌다. 진궁은 수액이 떨어지는 양을 조절하며 가운 주머니에서 적외선 체온계를 꺼내 장료의 귀에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살갗이 아파져 장료는 신음했다.
“37도 2분. 그래도 아까보다 열은 좀 내렸네.”
“쌤, 진통제 없어여?”
정신이 깨자 통증이 느껴지는 범위는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복부와 머리만 아프더니 지금은 온몸이 다 쑤시고 아파졌다. 체온을 잰 뒤 환자가 눈앞에 있음에도 휴대폰을 쳐다보던 진궁이 무언가를 치고 난 뒤에야 장료를 보고 씩 웃었다.
“주세요, 해봐.”
지금이 장난칠 때냐며 화를 내고 싶었으나, 열이 올라 몸이 으슬으슬해지고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기에 아쉬운 쪽이 접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주세여.”
“그래.”
장료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더니, 문을 향했다. 장료는 약을 가지러 가겠거니, 하며 눈을 감았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무언가 옆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장료는 눈을 떴다. 침대 옆 서랍 위에 뜯지 않은 생수 두 병과 컵을 두고 진궁을 다시 나가려 했다.
“쌤, 약은여?!”
당황하여 소리치자 그 진동에 몸이 아파 장료는 몸을 살짝 웅크리며 통증을 참아야 했다. 여전히 문가에 선 진궁이 환자를 앞에 두고도 비타스틱을 쭉 빨며 문밖으로 연기를 내뱉고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준다는 소린 안 했는데. 재고 없으니까 들어오는 대로 줄게.”
들어오는 게 언제인지도 이야기하지 않고 진궁이 나가자, 장료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면허는 있으나 당당하게 의료 활동을 할 수 없어 조직 아래 있어야 하는 진료소가 마냥 사정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진통제가 없다는 건 환자가 꽤 많았다는 것 같기에 장료는 통증을 참으며 눈을 꾹 감았다. 그래도 불을 끄고 나가준 게 어디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눈을 감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때 주변이 어두운 것을 봤을 땐 아직 아침이 오기 전인 듯했으나 정확한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커튼이 반쯤 쳐진 창으로 들어오는 미약한 달빛에 어두운 실내가 어느 정도 보였다.
장료는 제 입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나왔다는 걸 깨달았으나, 막을 길이 없었다. 열이 더 올라간 건지 생각보다 상태는 더 좋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머리가 욱신거리며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감각이 이어졌다.
속이 심하게 울렁거려 장료는 간신히 난간을 붙잡고 일어나 몸을 수그린 채 침대 아래에 토했다. 먹은 게 없어 시큼한 위액만 올라와 목구멍이며 가슴이 더 아팠다. 토악질하느라 몸을 굽힌 터라 배도 아팠다. 한참을 난간을 꽉 붙잡은 채 멀건 위액을 내뱉던 장료는 진궁이 두고 간 물병에 손을 뻗으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순식간에 빠졌다. 심한 몸살을 앓는 느낌이었다.
“큿…….”
아슬아슬하게 물병에 손끝이 닿았으나 그것만으로도 팔에 힘이 빠져 툭 물병을 친 순간 너무도 쉽게 물병이 서로 부딪쳐 아래로 떨어졌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장료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기력이 없었다. 정말로 멍하게 물병을 보고 있던 장료는 누군가의 손이 물병을 움켜잡자 고개를 들었다. 다부진 몸은 보였지만, 얼굴엔 음영이 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큰 손이 물병 뚜껑을 따고 컵에 물을 따랐다. 세운 상체를 기댈 수 있도록 침대 상판을 세워주는 대신 팔이 등을 감싸고 몸을 지탱한 뒤 물컵을 입술에 대주었다. 목에서 위액이 올라와서인지 물이 너무 썼다. 어두운 밤이었는데도 햇볕에 마른 풀 냄새가 났다. 장료는 천천히 물을 마시고 고개를 들었으나, 시야가 일순 흐려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장료는 어느새 자신이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과, 큰 손이 다리에 닿았다는 걸 알아챘다.
발목에 얹어진 손은 뜨거웠다. 병원복이 얇긴 했으나 그래도 체온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기에 장료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은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다리가 부었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고, 너무 약하지도 세지도 않은 힘이 다리를 주무르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다리를 주무르던 손이 무릎에 얹어졌다. 그리고 다시 허벅지 위까지 손이 올라왔다. 단지 안마일 뿐인데도 장료는 그 손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이 병원에 있다는 건 같은 조직원일 가능성이 컸다. 허벅지를 꾹 누르는 힘에 장료는 신음을 흘렸다. 손아귀에서 힘이 조금 풀렸다. 주무르는 대신에 옷 위로 원을 그리듯 문질렀다. 사타구니 근처까지 닿았던 손이 다시 무릎으로 내려갔다. 반대쪽 다리도 똑같은 손길이 닿았다. 얇은 옷감 위로 열기를 지닌 손이 몸을 더듬을 때마다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온 신경이 몸을 어루만지는 손에 집중되었다. 다리에 얹어졌던 손이 어느새 골반에 닿았다가 그대로 붕대를 감싸놓은 옆구리를 지나 단전 위에 얹어졌다. 손은 뜨거웠다. 붕대 아래 살갗이 열기에 후끈거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뜨거웠다.
“…….”
누군지 묻고 싶었지만 잠이 쏟아졌다. 배 위에 얹어졌던 손이 손등 위에 겹쳐졌다. 장료는 눈이 가물가물 감기는 와중에도 제 옆에 앉은 이를 보기 위해 노력했다. 헤드라이트를 켠 차가 지나간 것인지 밖에서 빛이 안으로 들어왔다. 커튼 틈으로 들어오는 빛에 사람 형태가 보였고, 짧은 머리카락과 콧잔등 위를 가로지른 흉터를 본 순간 장료는 눈을 뜨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다른 손이 눈 위를 덮은 탓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아픔이 가고 잠이 쏟아졌다. 햇살과 마른 풀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