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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written by. 한연화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는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 대한 기억은 이 나리에 온몸을 바쳤던 사람으로 남게 될 테니까요.”

 

   무너지는 등을 바로 세우는 조맹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말고 운장은 손에 쥔 총을 꼭 움켜쥐었다. 실탄을 장전하고 노리쇠를 푼 총을 들어올리며 운장은 맹덕이 대통령으로서 칠레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함께 들었다. 이제 곧 이곳 국영라디오방송국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쿠데타군에 의해 장악될 것이었다.

 

   “칠레 만세!”

   “칠레 만세!”

   “노동자 만세!”

   “노동자 만세!”

   “민중 만세!”

   “민중 만세!”

 

   대통령 조맹덕의 발언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그가 일평생 내세운 구호를 함께 외치는 측근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져갔다. 그러나 운장은 차마 그 외침에 함께 할 수 없었다. 그의 목표는 맹덕과 함께 칠레를 빠져나가 살아남을 수 없다면 최후까지 맹덕과 함께 싸우다 죽는 것, 오직 그뿐이었다.

   “왜 함께 외치지 않습니까?”

   라디오방송국에서 이제 결전의 장소가 될 대통령 관저 모다네 궁으로 이동하며 맹덕이 운장에게 물었다. 운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나라의 군 통수권자이기도 한 대통령이 자신의 부하인 육군 참모총장이 권력을 차지하고자 미국의 정보기관 CIA에 기대 일으킨 쿠데타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 상황이 기가 막히고 안타까워 그의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킬 조짐이 보인 것은 맹덕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였다. 지금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갈라져 싸우는 냉전의 시대. 그리고 그 시대에 미국과 가까운 칠레에서 사회주의자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미국에 있어 커다란 위협이었고, 이에 미국은 CIA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이권이 침해당할 것을 우려한 칠레의 자본가들과 대지주들, 그리고 관료집단들과 군대와 접선해 자금을 지원하며 맹덕의 사람들을 습격하고 암살했다.

   그 뿐이던가. 심지어는 칠레 내의 폭력조직들과 모다네 궁의 경호원들을 매수해 대통령 암살을 꾀하기도 하였고, 그때 맹덕을 죽이려던 경호원들과 그들과 내통해 모다네 궁으로 들어온 폭력조직원들을 혼자 막아낸 사람이 바로 운장이었다.

   “왜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그날 자신을 구하려다 부상을 입은 운장을 찾아온 맹덕은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분유가 없어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이 나라, 결코 가난하지 않으나 국민들은 배가 텅 비어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이 나라에서 모두의 배를 채워주고자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대통령이 되었으나 이제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한 남자의 울 것 같은 미소에 그날 운장은 자신도 모르게 맹덕의 입술에 입술을 겹쳤다.

   “울지 마십시오. 제가 함께할 테니.”

   운장은 제 침대 위로 맹덕을 끌어당겼다. 근육이 적은 팔이 쉽게 딸려왔다. 운장은 그대로 맹덕의 푸른 셔츠를 벗겨내려 했으나 맹덕은 운장의 손목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싫으시다면 억지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날 운장은 그저 맹덕을 품에 끌어안고 끊임없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맹덕은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들었고, 운장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일어나자 노래하러

   우리가 이기리라고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깃발들은

   벌써 저만치 나가고 있다

   너도 나서야지

   내 옆에서 행진하며

   그럼 보게 될 거야

   네 노래와 네 깃발이 꽃이 되어 피는 것을

   붉게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우리가 맞이할 새 삶을

   벌써 예고하고 있잖아

 

   일어나 싸우자

   민중의 승리가 눈앞에 왔다

   우리가 맞이할 새 삶은

   보다 나은 것일 거야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쟁취하는 거야

   천만의 투쟁의 목소리가 높이 일어나

   거대한 함성이 되어

   자유의 노래가 되어

   한 목소리 되어 말할 거야

   기필코

   조국이 이길 거라고

 

   맹덕을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르며 운장은 자꾸만 방문을 내다보았다. 늘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는 이 사람을 또다시 누군가가 해치러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운장은 자신의 품 안에서 아이처럼 잠든 맹덕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제 이 사람과 자신은 죽을 때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하게 될 것이었다.

 

*

 

   이제 민중이 일어나

   투쟁에 나서

   만천하를 진동하는 함성으로

   외친다, 전진!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답게 맹덕은 민중의 단결을 강조하는 노래를 좋아했다. 민중이 단결하면 어떤 세상이든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맹덕의 이상은 운장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맹덕의 말대로 민중이 단결해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세상이 왜 이 모양, 이 꼴이었겠는가. 결국, 모두들 단결은커녕 자기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서로 물어뜯고 싸우기 바쁘다 보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당신은 참 순진합니다.”

   “내가요?”

   “그럼 여기 당신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단 한 번이라도 민중이 단결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애초에 민중이라는 존재가 단결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던가. 지배자가 어쩌다 던져주는 빵 부스러기를 기다리며 목을 길게 늘이고 서로를 밀쳐내기 바쁜 것들이 민중이 아니었던가.

   아니, 애초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애초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나치게 탐욕적이었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들이라는 어린아이들도 태어나자마자 제 어미의 몸 속에 든 영양분이 모조리 빨아 먹히든 말든 젖부터 찾았고, 조금 더 자라서는 제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아이를 질투해 떼를 쓰고 거짓말을 해가며 물건을 탐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에휴, 더 말해서 무얼 합니까.”

   “내가 답답합니까?”

   “당연히 답답하지요. 인간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 텐데요. 당신을 죽이려 하는 것도 인간들이고, 그들의 편에 서서 어떻게든 자기 자식들 입에 분유라도 넣어주려는 당신을 욕하는 것도 인간들이지 않습니까.”

   “…..”

   “아, 그리고 당신을 욕하는 후자가 바로 당신이 말하는 민중이라는 것들이고요.”

   “너무 그렇게만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맹덕의 목소리가 너무 슬퍼 보여 운장은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당신이 가엾어서 그럽니다.”

   “……”

   “모두가 알아주지 않는 길을 가는 당신이 가엾어서 저도 모르게 말도, 생각도, 행동도 거칠어집니다. 미안합니다.”

 

   미국계 회사 네슬레가 칠레 정부 차원에서의 분유구입 요청을 거부한 날, 맹덕은 술을 마시며 울었다. 맹덕의 옆에 앉아 술상대를 해주던 운장은 맹덕이 제 셔츠를 잡으며 안아달라 말하자 깜짝 놀라 황급히 그를 떼어냈다.

   “이러는 거 아닙니다. 술김에 이러면 나중에 후회합니다.”

   “사실이었나 봅니다.”

   “…..”

   “정말 사실이었나 봐요.”

   네슬레가 칠레 내의 반정부세력에, 맹덕을 제거하려는 세력에 자금을 대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은 소문으로만 떠돌고 있었다. 그러나 소문은 이번 일로 기정사실이 되었고, 맹덕은 이제 명실상부한 미국의 적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힘이 듭니다.”

   “……”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토록 강대한 적이라는 걸 직접 겪고 나니 너무 힘이 들어요.”

   “…..”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어쩌면 말입니다.”

   “……”

   “칠레의 혁명을 위해서는, 그리고 민중의 승리를 위해서는 나의 피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운장은 깜짝 놀라 맹덕의 양팔을 움켜잡았다. 맹덕은 말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요. 모든 혁명은, 모든 사상은, 모든 철학은 결국 피를 먹고 자란다고요.”

   “안 됩니다.”

   “그러니 나 하나 죽어서 혁명의 도화선이 된다면, 혁명의 밑거름이 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 아닐까요.”

   그날 운장은 안아달라 고집을 부리는 맹덕을 그저 품 안에 끌어안고 토닥여주기만 했다.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무얼 합니까?”

   머리 위에서 들리는 비행기소리에 운장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모다네 궁의 창 밖으로 전투기 편대가 폭탄을 줄줄이 매달고 오는 것이 보였다. 운장은 맹덕과 함께 전투기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지금쯤이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육군참모총장이 전차부대를 몰고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것이었다.

   “우리 마지막까지 함께 싸우죠.”

   맹덕이 먼저 운장의 손을 잡았다. 운장도 맹덕의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끼며 노래를 불렀다.

 

   조국은

   하나로 뭉치고 있다

   시민들이 집결하고 있다

   북에서 남까지

   타오르는 소금광산에서 남쪽 숲까지

   투쟁과 노동의 뭉쳐진 힘으로

   민중이 나아간다

   조국 강산을 가득 채우며

   그들의 내딛는 걸음마다

   예고된 미래가 다가온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운장과 맹덕은 총을 들어 전투기를 향해 겨누었다. 마지막까지 싸우기로 한 이상 한 대라도 더 전투기를 쏘아 맞추겠다 다짐하며 두 사람은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며 노래를 불렀다.

 

   일어나자 노래하러

   우리가 이기리라고

   수백만이 모여들어

   진실을 높이 들고

   강철 같은 대열을 이뤄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정의와 이성을 양손에 들고 간다

   여인이여

   불 같은 용기를 내어

  그대도 여기 있군요

  이 노동자의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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