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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acy

written by. 야차

 

 

   一.

   죽고 싶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료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게 다냐?” 입안에 고인 피와 함께 뱉어낸 도발은 반항이 아니라 어서 끝내 달라는 재촉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소속된 무리가 없으면 먹잇감이 되는 것이 이곳의 법칙이다. 그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러 번 얻어맞은 머리가 아프게 울렸고, 시야가 흐릿한 와중에 자신을 향해 내리꽂아지는 주먹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저걸 맞으면 의식을 잃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좋아. 기다리고 있었다. 장료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

   기대했던 심판이 닥치지 않아 슬그머니 눈을 떴을 때, 시야에는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 있었다. 그는 저만치에 서서 장료를 에워싸고 있는 무리를 손으로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맞은 탓에 눈앞이 빙빙 돌아서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족히 2미터는 될 것 같은 커다란 사람이었다. 그가 이쪽으로 한 발씩 다가올수록 자신을 둘러싼 이들은 슬금슬금 물러났다. 씨발,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처음 시비를 걸었던 덩치마저 두려움이 느껴지는 웃긴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더니 꽁무니를 뺐다.

 

   그 남자는 장료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았다. 장료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채 흐릿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시선을 장료에게로 내렸다. 장료가 마음속으로 그의 특징을 새겼다. 사람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대신 남들을 다른 것으로 구분하기 위한 오랜 버릇이었다. 사물이 죄다 두 개로 보이는 탓에 눈에 들어오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큰 키. 긴 갈색 머리. 수염. 장료는 습관적으로 그 정보를 마음에 담았고, 그 사이 그는 잠시 그렇게 장료를 바라보더니 다시 몸을 돌려 왔던 곳으로 사라졌다.

 

   또다시 홀로 남겨졌다.

 

   장료는 교도관들이 다가올 때까지 바닥에 널브러져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삶은 지겹게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二.

   교도관들은 그가 수감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다른 재소자들과 충돌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그를 다른 방에 배정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대로라면 독방에 넣어야겠지만, 수용해야 할 인원에 비해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독방은 침대만 2층으로 올려 2인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의 새 감빵-메이트는 쉴 새 없이 조잘대는, 말이 많은 성격이었다. 녀석은 장료와 나이대가 비슷했고, 이름은 A였다. A는 장료가 얼마 있지도 않은 짐을 미처 내려놓기도 전에 자기가 어디 출신이고 (서주) 무슨 짓을 저질러서 (강도살인과 방화 그리고 기타 등등) 이곳에 왔으며 몇 년을 구형 받았고 (17년) 이전 룸메는 어쩌고저쩌고 (다 늙어빠진 냄새 나는 노인이었는데 겨울의 한기를 견디지 못했는지 어느 날 보니 죽어 있었다고 한다) 온갖 이야기를 다 늘어놓았다. 그동안 장료가 자신에 대해 말한 것은 이름 한 마디밖에 없었다. 듣다 못한 장료가 그래서 침대는 몇 층을 쓰면 되느냐고 물었을 때, A는 그제서야 현 상황을 자각한 듯 했다. 그는 그들이 앉아 있던 1층 침대를 가리키면서 여길 쓰면 된다고 말했다.

   “내가 1층 쓰라고?” 고마워, 라는 말을 덧붙이기 전 A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별거 아냐. 딱히 널 배려해서는 아니고, 여름에 냄새 오지게 올라오거든. 지금은 겨울이라 괜찮은데, 날씨 풀리면 진짜 개 토나와. 나 나가면 네가 2층 써.” 그가 방 한구석에 있는 변기를 가리켰다. 약간 겉면이 벗겨진 모습은 약간 이해할 수 없는 현대미술 작품 같기도 했고, 어딘가 무시무시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충고 정말 고맙다.” 장료는 눈을 굴리고서 침구를 깔기 시작했다. 퀴퀴한 곰팡내가 나는 얼룩진 담요는 가장자리가 다 닳아 있었다. 더러운 건 상관없는데, 얇아서 너무 추웠다. 하지만 나라는 새 담요를 지급할 생각도, 난방을 떼줄 생각도 없을 것이다. 누가 이런 인간들에게 신경이나 쓰겠는가.

 

   “너는?" A가 침구를 깔자마자 옆에 풀썩 앉더니 물었다.

   "뭐가?" 짐작은 갔지만 별로 답해주고 싶지 않았다.

   "뭐 때문에 왔냐고."

   "......내란죄랑 여러 가지."

   "너 스케일 크게 놀았구나?" 장난하나? 깐죽거리는 말투에 순간 화가 났지만 그걸 표출할 힘도 없었던 탓에 곧 가라앉았다. 장료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난 별생각 없었어." 우리 대장도 그랬고.

   "몇 년?"

   "무기야."

   "와우. 안 죽었네?" 그렇다. 반란군 주제에, 그것도 꽤나 중요한 자리를 해먹고 있던 사람 주제에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 이유는......

   "항복해서 그래." 입 밖으로 사실을 털어놓음과 동시에 가슴이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여전히 여포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반사되는 빛에 눈이 시려 눈물이 흐를 정도로 세상이 희게 덮인 날이었다. 장료는 그날이 다 가기 전 참호에서 기어 나와 추위에 얼어붙은 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 시점부터 끝내 여기에 오기까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분명 현재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부분임에도 꿈처럼 아득했다. 지금 겪는 것들이 사실 꿈이던지, 아니면 그 시절이 꿈이었던지. 둘 중 하나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지."

   "그런 거 아니야." 체면을 살리려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었다. 애초에 그는 항복한다고 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무조건 사형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라는 그에게 무기징역이라는 더 큰 형벌을 선고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즉결 처형이 아니었던 때부터 일이 꼬인 거였지만.

 

   "그럼?"

   "......"

   "알았어, 다른 얘기 하자."

 

   그들은 취침 시간이 되기 전까지 짧은 시간 동안 잡다한 얘기를 하며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여전히 몸이 아픈 탓인지 쉽게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장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밤만 되면 귀신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기억들을, 고작 하루긴 했지만 마주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三.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장료는 차츰 이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기상, 아침 조회, 아침밥,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일, 점심밥, 잠깐 자유시간, 다시 일, 저녁밥, 저녁 조회 뒤 취침.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해진 일상. 숨이 붙어 있기만 하다면 꾸역꾸역 해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얼굴을 잘 못 알아보는 것이 흠이긴 했지만 가슴팍에 붙어 있는 번호로 구별하면 그만이었다. 애초에 남들에게서 구분해야 할 만큼 깊은 친분을 나눈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교도관들에게도,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그는 죄수 중 하나였을 뿐이지 별로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무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인간인 이상 정은 든다. 오히려 장료는 남들에 비해 새로운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 빨리 섞여들어가는 축에 속했다. 그때 그에게 시비를 건 녀석들은 다시 다가오지 않았고, 그놈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딱히 장료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A 녀석이 여기에서 꽤나 발이 넓었던 탓에 그는 어렵지 않게 새 무리에 편입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 속에 끼어 생각 없이 유흥을 즐기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장료는 언제나 아무도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단 말이다.

 

   뭘 새삼스럽게. 장료는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지금은 그런 잡념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능숙하게 수비수를 제치고 골대를 향해 슛을 던졌다. 너덜너덜한 농구공은 골대를 통과하고 떨어졌다. 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장료는 그에 응해 짧게 웃어 보이고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잠시 끊겼던 생각이 다시 이어졌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유리감과 함께한 탓인지, 그는 더 이상 그 사실 자체를 문제 삼진 않았다. 그가 궁금한 것은, 다른 사람은 이렇지 않은지, 만약 자신과 같다면 어떻게 살아가는지였다. 삭막한 이곳에, 그의 호기심을 동하게 하는 존재가 있었다. 얼마 전 그를 도와주었던 그 남자였다. 흘끗 시선을 돌리니, 그가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 자기가 그에게 관심을 쏟기 때문에 그가 자신에게 신경을 쓴다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장료는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구별해낼 수 있는 것은 개별적인 특징뿐이었다. 그 남자는 대충 비슷비슷한 깡패처럼 생긴 사람이 좆같이 많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존재였다. 먼저 그는 머리카락이 길었다. 긴 머리카락은 이러저러한 물품 밀반입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기를 쓰고 구멍이란 구멍에는 뭐든 다 처넣는데 머리카락이라고 안 써먹겠는가!- 제제 대상이었다. 장료 역시 이곳에 들어오면서 길었던 머리가 깎였다. 하지만 그는 홀로 고고하게 장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옷도 달랐다. 그들에게 지급된 점프슈트형 죄수복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것에는 가슴팍에 큼지막한 주머니가 하나 달려 있었다.

 

   하지만 장료가 그를 남들과 구분해서 알아볼 때 무엇보다도 신기하게 느끼는 점은, 뭐랄까, 형용하기 어려운...... 언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느낌, 분위기, 기품 같은 것이 남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튀는데도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방에서만 보내는 것 같았고, 다들 끼리끼리 뭉쳐 다니는 소중한 운동 시간에도 늘 혼자였다. 장료는 그에게 다가가서, 적어도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던가, 아니면 얼굴을 책에 숙이고 있던가 항상 둘 중 하나였다. 다가갈 만한 적당한 구실이 필요했다. 장료는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실수인 척 공을 바깥쪽으로 튀겼다. 공은 의도한 대로 그 남자를 향해 굴러갔다. 장료가 미처 다가가기 전, 몇 발자국 전 그 남자가 자기 발치에 굴러온 공을 주워들더니 그것을 장료에게 던졌다. 장료는 가볍게 공을 품에 받고서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조금 숙였다. 장료는 몸을 완전히 돌리기 전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저기, 같이 할래요?"

   "......" 그가 장료를 빤히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알겠어요." 장료는 끄덕이고서 뒤돌아 자신을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날 경기는 그들의 승리였지만, 장료는 그를 생각하느라 마음이 편치 못했다. 갈색 눈동자에 담겨 있던 것은 장료가 익히 알고 있던 것이었다. 고독.

 

 

四.

   “너 아까 존나 용감하더라.” 저녁 작업을 마치고 다시 A와 만났을 때, 그가 그렇게 말했다.

   “뭐가?”

   “걔한테 말 걸었잖아." 대충 누구일지 짐작이 갔다.

   “그게 특별한 일인가?"

   “그치! 그 인간 존나 무섭다고."

   A는 교도소 내 다른 무리들이 소속 없는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역으로 된통 깨졌던 얘기를 해주었다. A는 그가 싸움을 잘 하기도 하지만, 권력으로 따져 봐도 여기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교도소 내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았는데 교도소장까지도 함부로 못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바깥의 높으신 분과 연줄이 닿아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감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그것은 장료도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그렇지 않다면야 규칙을 무시하고 그렇게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야?"

   "뭐였더라, 아. 관우."

   "관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지만 떠오르는 게 딱히 없었다.

   "왜, 관심 있어? 취향이야?" A는 관우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사실을 몰랐다, 별로 알려주고 싶지도 않았기에, 장료는 그냥 항상 튀길래 눈이 갔다고 둘러댔다. 

   “근데 그 사람, 목소리를 한 번도 못 들은 것 같아.”

   “아직 눈치 못 깠어? 걔 병신이잖아.”

   “뭐?”

   “척하면 척 모르냐? 얼굴에 칼빵 나 있잖아. 아, 하긴 너도 병신이랬지. 안면인식장애.”

   “칼 맞아서 말을 못 한단 소리야?”

   “응, 뭐, 비슷하지. 어쩌다가 혼자 잡혔는데, 경찰서 가서도 끝까지 안 불겠다고 개기다가 빡친 짭새들한테...”

 

   A는 말하는 대신 혀를 쭉 내밀더니 손으로 가위 모양을 만들어 그걸 자르는 시늉을 했다. 장료는 과장스럽게 고통을 표현하는 A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A는 그런 장료를 보고 킬킬 웃었다. 

   “그래도 배신자는 아니라는 거네.”

   “뒤통수 맞은 적 있나 봐?” 장료는 대답 없이 그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A는 침대 난간 너머로 상체를 숙여 그의 표정을 흘끗 살피더니 격양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달빛에 침 몇 방울이 튀기는 것이 보였다. 

 

   “그런 새끼들은 쳐죽여야 해.”

   “동감이야.” 

   “고자질하는 놈들만큼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없다니까.”

   “그렇지.” 장료는 멍하니 대꾸했다. 

 

   그렇다. 그 또한 배신자를 최악의 인간상으로 분류했다. 동료를 팔아치워 목숨을 구걸한다? 한때 형제라 여기며 알고 지냈던 인간들의 목소리가 떠올라 토할 것만 같았다. 장료는 그럴 바에는 죽음을 택할 사람이었다. 그들도 마땅히 죽음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런데, 문득 좁아터진 감방에 구겨 넣어진 중범죄자들끼리 누가 나쁜 놈이니 따위를 논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자, 이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는 남을 원망할 만큼 떳떳한 사람인가? 진정으로 부끄럽지 않으려면 죽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차츰 느려지기 시작하는 심장 박동이 백색이 된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래서 그는 그냥 벽을 향해 돌아눕고서 눈을 감았다. 그날 이후 늘 그랬듯, 검은 시야 위로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무리 눈을 세게 감아도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의식에 빠져서조차 장료는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장 비참한 건 그들의 얼굴이 텅 비어 있다는 거였다.

 

 

五.

 

   마치 레슬링을 하듯 바닥에 엉겨 붙어 고함을 지르며 서로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는 두 남자의 모습은 점심시간에 TV 대용으로 즐길 만한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였다. 춘절 기간 동안 아무것도 없었던 대신 주는 선물인가.

 

   교도소 내에서는 모든 무기, 그리고 무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는 것들-사실상 맨몸뚱이 빼고 모든 것- 은 모두 압수 대상이었다. 하지만 조악한 사제 무기가 교도관들의 눈을 피해 으슥한 곳에서 거래되고 있었고, 무엇보다 여기에 수감된 사람들은 십중팔구 무기가 없더라도 타고난 주먹 두 개 만으로 남을 초주검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인간들이 쥐꼬리만한 공간에 가득 밀어넣어져 하루 24시간 내내 부대끼며 살고 있으니,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그들 간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를 취했다. 아니, 방관이라기보다는 오락 거리로 삼았다는 편이 맞았다. 이렇게 혼란한 난세에, 죽어 마땅한 인간 하나 따위 사라져 봤자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의 반응이면 차라리 나았다. 창살 밖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싶은 몇몇 인간들은 심지어 싸움을 부추기기도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역겨운 면상을 가진 한 교도관이 그 꼴을 보며 낄낄거리다가 사태가 조금 진정되는 것 같자 재미가 없었는지 그들을 향해 뭔가를 집어던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위로 배식 받았던 바나나 껍질이며 싸구려 주스팩 따위가 쏟아졌다. 상대의 몸 위에 올라타 우위를 점한 채 주먹 날리기에 여념이 없던 놈이 쓰레기 세례를 받더니 화가 치밀었는지 하지 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는데, 그 틈을 타 밑에 깔려 있던 놈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전세를 역전시켜 버렸다. 환호성과 휘파람이 울렸고, 그놈은 맞았던 것보다 더 갚아주기 위해 바쁘게 몸을 놀렸다. 거대한 주먹이 배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역전당한 놈은 캑캑거리더니 결국 토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으, 씨발 더러워.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린 그때 장료는 관우를 보았다. 오렌지색 옷을 입은 사람은 수없이 많았지만, 오직 그만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그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 난장판을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지켜보고 있었다. 장료는 충동적으로 식판을 들고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여전히 다들 난장판에 관심이 팔려 있었고, 관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곳에 눈길을 두고 있었다. 장료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왜 안 말려요?” 관우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불쑥 자신 옆에 다가온 장료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웃옷 주머니에서 메모장과 펜을 꺼냈다. 

   그래서 필요한 거였군. 저런 식으로 의사소통하는구나. 장료는 그가 고개를 숙이고 글자를 써 내려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느슨하게 묶은 긴 갈색 머리카락, 마찬가지로 갈색인 눈동자, 숱 많은 수염, 조금 붉은 기가 도는 깨끗한 피부. 입가의 흉터. 장료는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특징들을 이미지로 모아 온전한 한 사람의 얼굴을 그려낼 수 없고, 그저 불완전한 파편으로만 기억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더 살필 겨를을 주지 않고, 그가 곧 메모장을 장료에게 들어 보였다. 노란 종이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쓰레기들끼리 싸우는 걸 굳이 떼 놓을 필요는 없지.

 

   “내가 아마 쟤네보다 여기서 더 오래 살아야 할걸요? 여기 온 이상 다 쓰레기죠 뭐. 난 쓰레기인데도 구해줬잖아요. 그럼 나는 재활용 쓰레기인가?” 

   “......” 무슨 답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무감각한 표정. 장료는 머쓱해져 괜히 웃었다. 

   “농담이에요. 저기, 이름, 관우 맞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료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료에요. 장문원.”

   “음.” 그가 입의 움직임 없이 낮은 음성을 냈다. 알겠다는 뜻 같았다. 

   그땐 고마웠어요. 이전부터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었지만 막상 마주하고 보니 꺼낼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무덤덤한 사람일 줄 알았겠는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속내 모를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장료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럼 나는 왜 도와줬어요?” 그의 물음에 관우는 잠시 망설이더니 펜을 들었다. 그는 한 단어를 적을 때마다 그 위에 다른 선을 그어버리길 반복했다. 장료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은 슬슬 끝나가고 있었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있었다. 더 있다간 늦는다.

   

   "또 올 테니까 알려줘요." 장료는 그렇게 말하고서 식판을 들고 자리를 떴다. 등 뒤로 자신을 향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날 밤, 저녁 점호를 돌던 교도관이 창살을 사이로 두고 장료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그 인간은 미심쩍은 표정을 하더니 종이쪽지 하나를 던지듯 건네고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방을 확인하러 가버렸다.

   "뭐야, 연애편지냐?"

   "아냐." 장료는 그게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알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는 그가 기다렸던 답이 정갈한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문원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하마.

   내가 널 도와준 이유는, 네가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널 다른 사람과 착각한 것 같다.

   그래도 물어봐야지. 여긴 어때, 그때 그 녀석들은 이제 안 건드리니? 지낼 만하니?

   알려주면 좋겠다. 내일 다시 보자.

   - 운장

 

   지낼 만하냐고요? 그럴 리가요. 개 좆같죠. 여긴 진짜로 좆같았다. 괴롭힘이 없어졌다고 해서 끔찍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니었다. 관우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이 삭막하고 단조로운 공간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어떻게 사는지 물어봐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구석이 있었다. 암흑과 같은 심해에서 한 몇 미터 떠오른 정도였지만, 그래도. 비록 그는 그가 장료를 도와준 것이 착각 때문이었다고 했지만, 그래도. 장료는 그 짧은 편지를 반복해서 읽으며 답을 생각했고, 불이 꺼졌을 때도 그 글자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모르는 탓에, 편지는 음성이 아니라 그림으로 읽혔다. 장료는 머릿속으로 마지막 줄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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