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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written by. 보리

 

 

   차창을 내렸다. 길쭉이 담배를 빨아 물고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옆자리 조수석에는 노란 서류봉투가 놓여있었다. 두툼해서 제대로 잠기지도 않는 서류봉투의 안위를 살피려 조조는 힐끔 곁눈질했다. 당연히 제 자리에 잘 있다. 시선은 다시 꽉 막힌 앞으로 향했다.

   평일의 끝에 러시아워가 겹쳐 지독하게 막히는 도로 위였건만,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놀이공원에 발을 들여놓은 어린아이처럼 살짝 들뜨고 기대감이 차올라 있었다. 얼마 만이더라. 이런 상쾌한 기분. 지긋지긋했지. 남의 구린 뒤를 파내는 건. 밑 작업은 끝났다. 구멍은 다 파놓았으니 묻어버릴 일만 남았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행렬에 라디오를 튼다. 스피커 안에서는 스팅의 노래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다시 한 모금 담배를 빨았다. 순식간에 종이가 타들어가고, 붉은 불꽃이 조조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평소에 자주 즐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 필요할 때가 있었다. 커피로 죽을 쑤어먹어도 통하지 않을 때, 좀 더 각성이 필요할 때, 혹은 진정이 필요할 때.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손끝으로 운전대를 두드렸다. 삑, 삑, 삑, 삐이-. 라디오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오후 6시 정각을 알렸다. 아 참. 시간이 이렇게 됐던가. 이제 곧 시작하겠군. 며칠 밤을 지새운 강행군에 깜빡 잊고 있었던 일정이 떠올랐다. 서운해하지는 않겠지만, 연락이라도 해줘야겠지. 창틀에 한쪽 팔을 걸치고 거치대에 매달려있는 휴대전화 화면을 무심히 툭툭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세 번쯤 울리고 나서 잠시 공백이 있었다. 누군가와 연결됐다는 뜻이다. 금방 받는 걸 보니 행사 시작은 아직인 모양이었다. 스피커폰으로 돌리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만. 어딘지?]

   “어, 미안. 오늘 못 갈 것 같다.”

   [Well…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좀 쓸쓸하군. 네 자리도 마련해놨는데.]

   “쓸쓸하기는 개뿔. 잘나신 의원 나리 보려고 때 빼고 광낸 노인네들 다 거깄을 텐데. 사람 많아?”

   전파 속 저 너머에서 자그맣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왁자지껄하고 알아듣기 힘든 소리가 웃음 뒤의 배경으로 깔렸다.

   [비루한 쇼이니만큼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모였군.]

   “조심. 옆에 들릴라.”

   조조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원소 자 본초의 출판기념회 날이다. 말이 출판기념회지, 사실상 점호의 의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얼마 후에 있을 선거를 앞두고 서로 눈도장도 찍고 사진 몇 장 남기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은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눈에 잘 들어오는 법이라. 누가 누구랑 가깝다더라. 누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수 있다더라 하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만인의 쇼.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을 위한 쇼다. 얼마만큼 많은 사람이 참석하느냐가 그 인물의 현재 척도와 다르지 않았다. 대세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원본초가 주인공인 행사여서야, 여야 관계없이 사람으로 미어터질 게 뻔했고 한마디씩 인사를 주고받기만 해도 혼이 다 빠질 만큼 바쁠 터였다. 그러니 쓸쓸하다는 원소의 너스레에 웃어버릴 수밖에 없지 않나.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바쁜지?]

   “너보다 중요한 사람 만나러 간다.”

   [그런 사람이 있나? 누구?]

   “왜, 질투 나냐?”

   [물론. 바람맞은 남자의 심정을 사랑하는 낭심 친구가 알 리가 있나. (눈물)]

   “얼씨구? 됐고, 조금 이따 장 차검 만나기로 해서.”

   휴대폰 너머로 정적이 흐른다. 눈치를 채지 못한 조조가 히죽 웃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게 승인 안 해준다고 버티더니. 더는 못 버티겠던지. 이걸로 지긋지긋한 놈들 발목 잘라버리게. 기대해라. 내일 네 기사 지분 내가 다 가져간다.”

   [아만. 지금 어디라고?]

   “고속도로 위. 왜?”

   [아만. 잘 들어.]

   사뭇 낮아진 목소리에 의아하면서도 조조는 귀를 기울였다.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즈음 원소가 입을 열었다.

 

   [장 차검사장 여기 있어.]

   “……뭐?”

 

   씨발.

   입가의 미소가 사그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급히 밟은 브레이크에 차체가 덜컹거렸다. 뒤에서 쫓아오던 차들이 뺑뺑 클랙슨을 울렸다. 다행히 거북이걸음이라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면했다. 짜증이 확 일었지만, 그것은 고음의 경적 때문이 아니었다. 되돌려 갈 수도 없는 빽빽한 도로 위였다. 미간이 사납게 구겨졌다. 조조는 그다지 많이 벌어지지 않은 공간을 좁히려 지그시 액셀을 밟았다.

 

   [아만. 갈 건가?]

   “가야지. 그럼.”

   실소를 흘렸다. 목 빠지게 날 기다리고 있을 텐데. 기대에 부응해줘야지 않겠냐?

   두 시간 전에 장 차장검사와 직접 잡은 약속이었다. 그사이에 잊어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물밑에서 놈들과 연결되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보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같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실없이 웃는 낯짝으로 이렇게 대놓고 칼을 뽑으시겠다? 조조는 어금니를 악물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래. 한 번 칼을 뽑았으면 저나 나나 둘 중 어느 하나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 텐데. 일부러 자리를 비운 차장검사 대신 날 기다리는 건 누구일지? 누군지 얼굴이라도 봐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된 이상 피하기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고. 오히려 피해버리면 언제 어디에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만약 별 볼 일 없는 애송이 하나 달랑 심어놨다면 이 조조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 물론 애초에 용서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아만. 부디 경거망동하지 마. 지금 당장 사람을 불러다 주지. 아무리 늦어도 지금부터 한 시간 안에 도착할 거야. 이르면 30분. 일단 사람을 모아서 밑에 대기시키고 움직여. 무엇보다도 네 안전이 가장…]

 

   “좆 까라 그래!”

   아만! 말이 다 끝맺어지지 못하고, 휴대전화가 조수석 한구석에 신경질적으로 처박혔다. 사방이 다 가로막혔다. 어느 하나 썩어 문드러지지 않은 곳이 없다. 연기를 머금었던 입안은 텁텁하고 바짝 메말랐다. 꽉 막혔던 정체는 해소구간에 접어들어 각양의 차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사방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조조의 잘 빠진 세단도 도로 위를 유려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둠이 어스름 내린 도시 속을 매끄러운 빛 하나가 꼬리를 빼어내며 갈랐다. 열린 차창으로 사정없이 쏟아 들어오는 바람에 조조의 머리카락이 형편없이 흩날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대신 차체에 부딪혀오는 바람과 으르렁거리는 엔진 소리만이 조조의 심장을 두드려댔다.

 

   기생충 같은 새끼들. 짓씹어 내뱉었다. 조조는 그들을 벌레라고 불렀다. 검찰 내부에 벌레가 꼬인 것은 오래된 일이다. 조조가 태어나기 전부터. 혹은 그 전, 전의 전부터. 그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했다. 뇌물, 청탁, 살인, 폭력. 죄 없는 소시민들에게서 갈취하는 일. 벌레는 알을 까고 또 살아남아 각기 새로운 알을 깐다. 무슨 짓을 하건 도무지 박멸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잔챙이 한둘 잡는다고 해결될 일이었으면 좋았을 거다. 새까맣게 포진해 있는 벌레를 소탕하려 서까래 밑과 마루 아래를 구석구석 다 뜯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문제였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집을 통째로 불태우는 일일 것이나, 그것은 조조의 영향력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벌레의 존재를 알면서도 참고 모르는 척 한집에 사는 건 할 짓이 못 된다.

 

   조조가 공직에 올라 맡은 일이 그것이었다.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것들을 틀어잡아 심판대 앞에 서게 하는 것. 처음 얼마간은 제 일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눈앞에 뻔히 있는데도 까득까득 손톱을 물어뜯으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조조의 안방까지 제멋대로 활개 치고 다녔다. 거짓 웃음으로 무마하거나 오만 인상을 쓰며 몸을 빼어 달아나려 해봤지만, 그것은 뒷간까지 쫓아와 조조의 뒷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 멀리 찾아볼 것도 없이 그의 집안부터 어마어마한 떡값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목숨을 부지해왔으니 새삼스레 놀랄 것도 아니었지만, 뒷방 늙은이들이 서로 배 불려주는 걸 방치하는 것과 무뢰배들을 마주하는 것의 체감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특히 벌레가 말을 걸어올 땐 속이 뒤틀리고 소름이 끼쳐 참을 수가 없었다. 웃는 낯으로 받아주고 있는 자신도 역겨웠다.

   그래서 매달린 일이었다. 집을 전부 태울 수 없다면 놈들의 집이라도 파헤쳐 주리라고. 전부 박박 긁어내고 파묻어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그렇게 시작한 일이었건만 되려 발목을 물리게 생겼다.

 

   청사는 전에 없이 고요했다. 완전히 어두워진 가운데 드문드문 창에 불을 밝힌 위엄 높은 건물이 조조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는데, 로비를 빠져나가는 직원 몇과 경비원 정도만 눈에 들어왔다. 이름 있는 자들은 전부 원소의 행사에 가 있을 터였다. 그래도 사시사철 환하게 불을 밝히는 것이 예사인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이 이만큼이나 없는 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텅 빈 복도를 따각거리는 조조의 구두 굽 소리만 가득 채웠다. 장O 차장검사. 조조의 상관이자 아군이라 생각했던 사람. 아래에서 올라오는 모든 사건이 공식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결재를 담당하는 중요한 자리. 문패가 달린 집무실 앞에 도착해 섰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안에는 아무도 없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있겠지.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며. 외출로 표기된 일정표에 가만 눈길을 주다 문고리를 쥐어 눌렀다. 가장 먼저 달려와 반겨주는 것은 매캐한 담배 연기였다.

 

   “실내는 금연입니다. 사장님.”

   “여, 이게 누군가. 조맹덕이.”

   문을 열자마자 알았다. 이런. 설마 본인이 직접 납시었을 줄은. 남들의 두 배만 한 어깨와 펑퍼짐한 등. 유리창 밖의 야경을 감상하던 비대한 몸뚱이가 조조를 향해 홱 돌았다. 커다란 가죽 의자가 버텨내지 못해 삐걱대는 꼴이 위태롭기 그지없었고,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 보일 적에 만개하는 주름마다 탐욕이 형태를 갖춰 그득그득 들어찬 듯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납시셨는지.”

   조조가 잘 아는 남자였다. 아주 잘.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재킷에 요란한 무늬의 셔츠를 가슴까지 풀어헤쳤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성긴 가슴 털이 훤히 다 보였고 턱 전체를 다 덮은 수염은 빳빳하고 억셌다.

   “오랜만이네. 안 그런가?”

   남자는 두툼한 잎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이를 보이며 웃었다.

   “내가 우리 조맹덕이를 그렇게 찾았는데 말이야. 어째 통 볼 수가 없어서 내 직접 찾아왔네. 그간 별일 없었고? 여 와서 앉지.”

 

   조조는 대답 없이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책상 위로 툭 던졌다. 가슴 앞으로 떨어진 종이뭉치를 놀란 척 내려다보던 남자가 조조를 향해 물었다.

   “이게 뭐고?”

   “회포는 다음에 풀기로 하지요. 약속이 있어서. 항복 선언. 백기입니다, 그거.”

   “허이고, 조맹덕이.”

   껄껄껄 호탕하게 웃어넘긴 남자가 다음 순간 눈을 부라렸다. 보기에는 낡아빠져 흐릿한 눈동자인데 안광만큼은 형형하다.

   “내가 한번 속지 두 번 속을까?”

   “……”

   “하여간 조맹덕이 무모한 점은 알아줘야 해. 내가 이래서 조맹덕이가 좋아. 허지만! 어째 죽을 곳을 제 발로 찾아 들어왔을꼬.”

   남자가 책상 위에 상체를 기대어왔다.

   “필경 무슨 다른 속셈이 있는 게지.”

   “다른 속셈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가진 건 이거 하나뿐이라.”

   조조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보이고 두 손바닥마저 내보였다.

   “내 마지막 무기 지금 동 사장님 앞에 있는데. 지금까지 모은 증거들, 다 드리리다. 만약 다른 게 있다 한들 내가 면전에서 동 사장님 당해낼 수 있답니까?”

   “그럼, 어째서 꼬리 말고 도망가지 않고?”

   “아무리 동 사장님이라도 설마 나라 땅에 피 뿌리려고? 여기 눈 피할 데 없잖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깨끗하게 항복하렵니다. 내가 졌습니다. 이 싸움. 옛정을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냐, 내 이것 받아두마. 암만 쓸데없는 짓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거 이번에 잘 알았을 테고.”

   “선처에 감사드립니다.”

 

   뻐근해지도록 허리를 굽혔다. 몸을 바로 하니, 턱을 괴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남자가 보였다. 조조는 등을 돌렸다. 뒤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이렇게 보내주는 것인가? 정말로? 제 목을 노렸던 자를?

 

   “그런데 조맹덕이.”

   그럴 리가 없지.

   “하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내가 가르쳐줄까.”

   조조는 완전히 돌아서지 않고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희번들한 눈빛에 기이한 빛이 스며들어있었다. 오만이라고 설명하기엔 부족한. 확신과 자존심이 느껴지는 눈빛.

   “여기 지금 밟고 있는 그거. 나라 땅이 아니라 내 땅. 내 땅이야. 이 동중영이 땅이란 말이야. 잘 알아두라고.”

   억지로 웃어보려 했지만, 얼굴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다. 커다랗게 뜨인 두 눈이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네. 그렇겠지요.”

   조조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남자는 기분 좋게 웃었다. 예전에도 그리 느꼈지만 이번에도다.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다.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기보단 목덜미를 물어뜯어 복종시킬 사내다. 이 정도로 밟는다고 납작 엎드려 있을 자가 아니다. 당장에야 죽은 척하겠지만 언젠가는 독사처럼 머리를 치켜들고 불시에 공격해 올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까웠다. 같은 뜻을 품었으면 쉬이 모든 걸 장악했을 텐데. 진의를 숨긴 채 살랑거리며 아부했던 꼴이 꽤 귀엽기도 했었고. 의외로 고지식한 면이 발목을 잡았다. 맹수이나, 날짐승은 아니어서다. 저와 그가 딛고 자란 땅이 달라서다. 군침이 도는 입맛을 쩝쩝 다시고 홀로 남겨진 남자는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아그들아, 귀헌 분 가신다. 배웅해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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