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고 나와 몇 발자국 옮기다, 얼마 못 가 멈춰 섰다. 소리 없이 중얼거리며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나라 땅이 아니라 내 땅이야! 내 땅!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동중영이 이곳을 자신의 땅이라 한다. 그 말인 즉.
지금 이 곳, 그리고 그 밖의 어디든 안전하지 않을 거라는 협박이자 경고다. 자신이 원하면 피를 뿌릴 수 있음을 뜻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물론 깨끗이 치워내겠지. 튄 핏방울 하나 찾아볼 수 없게. 어쩌면 일벌백계로 보란 듯이 전시해 놓을 수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그자는 공포를 이용하는 데에는 타고났으니. 최대한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복도는 아까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보면 볼수록 계단 끝 어둠은 일분일초가 무섭게 조조에게서 멀리 달아나려는 것만 같다. 복도 끝 계단 쪽에 시선을 집중하자, 아까는 분명 켜져 있었던 마지막 형광등이 꺼져있는 걸 발견한다. 아, 그래. 저 벽 뒤쪽엔 몇 놈이 숨어있을까? 둘로는 부족할 테고, 셋? 흘러내린 안경을 추어올리고 복도 끝에 집중했다. 그러자, 건너편에 달린 창문에 어렴풋한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잘 보이진 않지만, 희미한 빛들이 유리창에 반사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주 조금씩, 흔들리는 빛.
셋이군.
그럼 그렇지. 이렇게 몸 성히 보내주실 리가 있나. 기척을 숨겨 몰래 엘리베이터를 탄대도 전부 내려가기 전에 저들이 따라잡을 것이다. 특히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다면 반격할 공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건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고, 숨어봤자 놈들의 손바닥 안이다. 모든 가능성을 셈하고 나자 결론이 나왔다. 정면 돌파 하는 수밖엔 없다. 조조는 휴대전화를 꺼내 켜지지도 않은 그것을 귀에 갖다 댔다. 일부러 통화하는 척하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어, 난데. 다 끝나고 이제 돌아가려고.”
한 박자 말을 쉬고.
“생각보다 일찍 끝났지. 우리 사장님께서 인덕이 후한 분이시라?”
또 한 박자 쉬고.
“어. 지금 당장은 곤란해. 아직 처리해야 할 문제가 하나 남았거든. 그것까지만 일 보고 그쪽으로. 응.”
휙, 플래시가 켜진 휴대전화를 다짜고짜 어둠 속으로 던졌다. 갑자기 뛰쳐나오는 형체에 반사적으로 놈들의 눈이 따라가는 찰나, 조조는 가장 앞에 있는 자의 면상을 주먹으로 힘껏 후려갈겼다. 고개가 팽 돌아가며 몸의 중심이 무너졌을 때, 조조의 무릎이 복부에 파고들었다. 그제야 조조를 향해 덤벼드는 나머지 놈들에게 얻어맞은 사람을 힘껏 밀어 넘어트렸다. 우르르 계단을 세 명이 함께 굴렀다. 재빨리 휴대폰을 주워들고, 놈들 중 하나가 손에서 놓친 칼 한 자루를 챙겼다. 쫙 벌린 한 뼘 만한 크기에 날이 날카롭게 서 은빛으로 번쩍번쩍했다. 살짝만 스쳐도 살갗이 갈라질 것 같이 서슬퍼렇다. 저들끼리 엉키어 나뒹구는 사이, 조조는 그들을 지나쳐 내달렸다. 악에 받친 욕설과 고함을 뒤로 계단을 두 개, 세 개씩 뛰어넘으며 밑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반 이상 내려갔다고 생각될 즘에 아래에서 올라오는 여러 명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마치 평야를 달리는 말처럼 빠르고 사납다.
씨발.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위에서도 발소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아까 굴러 넘어졌던 놈들이 다시 일어나 쫓아오고 있는 거였다. 관자놀이 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대로 가다간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 하고 꼼짝없이 붙잡히게 생겼다. 얼른 몇 계단 올라가, 다른 층에 이어진 복도 안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 건물엔 사람들이 다니기 좋은 널찍하고 탁 트인 주 계단이 있는 한편, 중간 즈음에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비상구 계단도 존재했다. 매일 드나들던 곳이라 건물 구조는 눈에 훤했다.
잡아! 잡아! 저쪽이다!
숨을 들이켰다. 뒤에서 한발 늦게 조조의 동태를 파악한 놈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조조는 비상구 계단 문을 열어 곧바로 아래로 향했다. 4층. 3층. 2층. 타닥. 타닥. 타닥. 제길. 문제는 또 있었다. 놈들을 따돌리고 바깥으로 완전히 나가려면, 도중에 건물 안쪽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밑으로 가면 갈수록 비상구에서 건물로 통할 수 있는 문이란 문은 모조리 잠겨있었다. 한층 내려가서 문고리를 흔들어보고, 또 한층 내려가서 덜그럭거렸다. 하나 죄다 허사였다. 이를 어쩐다… 1층. 그리고 지하 1층. 역시나 잠겨있다. 뒤따라오는 소리가 아까보다 가까워졌다. 이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번도 막혀있다면 이번에야말로 독 안에 든 쥐 꼴이 될 것이다. 제발, 이번에는 제발! 지하 2층 주차장으로 향하는 문. 다행히 열려있다! 주차장은 바깥과 뚫려있고 24시간 셔터가 내려가지 않으므로, 이제부턴 두 다리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아악! 악!!!!
조조는 거의 포효했다. 이를 꾹 물고 그새 땀에 흠뻑 젖은 머리를 좌우로 털어내며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한 무리의 무뢰배들이 조조를 따라 주차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팔다리가 죄다 뻐근하고 근육들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조금도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어느 때보다 빠듯한 긴장감으로 전신이 녹아들었다. 그때였다. 조조의 옆으로, 머리 위로 굉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엉거주춤하기를 잠시, 나란히 세워진 차량 사이로 구르듯 몸을 피했다.
미친, 이젠 총까지 쏜다고?
파앙, 팽. 스쳐 지나가 꽂히는 타격음은 요란하다. 콘크리트 벽은 둥글게 패이고, 몇 개의 차에서 안전 경보가 빼액빼액 시끄럽게 울었다. 그것이 몸을 숨기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은 조조는 잔뜩 웅크린 채로 주차된 차량들 사이를 허겁지겁 달렸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앞유리가 깨지고, 저쪽에선 타이어가 터져 차가 기울어졌다. 놈들과의 거리가 상당히 좁혀졌다. 나 하나 잡으려고 몇 명이나 풀어놓은 거냐고. 대여섯 정도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텐데. 그보다 육탄전이 아닌 총이라서야 승산을 점쳐볼 수도 없다. 제길. 고개를 쳐들었다.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 조조는 그곳에 시선을 맞췄다. 막아줄 차도, 벽도 없는 훤히 뚫린 저 길로 반드시 가야만 한다. 주변에 다른 출구는 없었다. 이제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심장이 방망이질 치듯 뛰었다. 차와 차 사이를 지그재그로 지나다니며 최대한 안전을 꾀했다. 그리고 이제 뚫린 길로 뛰쳐나가려 마음먹은 그때. 갑자기 무언가의 힘이 조조를 덮쳤다. 뒷덜미를 붙잡혀 굵다란 기둥 뒤쪽으로 순식간에 끌려들어 갔다. 손에 들었던 날붙이마저 간단히 빼앗겼다. 그 순간 조조의 감상은 '뒤졌네' 였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남자는 손가락 하나를 세워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보낸다. 시커먼 모자를 눌러쓰고, 눈가에 그림자를 드리운 남자가 입을 꾹 다문 채 뒤를 살폈다. 조조는 벗어나려 바닥에 발을 굴렀다. 그러나 여전히 뒷덜미를 단단히 붙들린 채였다.
“형님.”
“?”
입 모양이 벙긋벙긋 그렇게 말한 것 같다. 바람 새는 소리 비슷하게, 언뜻 그렇게 들렸던 것도 같지만, 확신은 하지 못한다. 조조는 저항을 멈추었다. 무언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세를 낮추고 숨소리 하나 내지 않으며 저 뒤쪽의 동태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듯했다. 한 손으론 조조를 꽉 붙들어 매고 있으면서. 저들의 편이었다면 붙잡은 즉시 다른 손에 쥔 날카로운 칼로 조조의 숨통을 끊어놓았어야 했다. 하나 지금 그는 사냥감을 기다리는 범처럼 고요하다.
놈들은 양손으로 쥔 총을 아래로 곧게 내리거나 뺨 옆으로 바짝 세운 채,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가며 다가오고 있었다. 20미터. 10미터. 이제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바닥을 딛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더 있으면 숨소리까지 들릴 터다. 아주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남자는 바닥에 손끝을 대고 땅의 울림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모자 밑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진 않으나 그의 눈동자가 허공의 한 지점을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왼쪽에서 먼저 올 것인가, 오른쪽으로 올 것인가. 조조도 남자를 따라 일어서려 했다. 그러다 구두 밑의 흙먼지에 발 한 짝이 지익, 조금 미끄러지고 만다. 순간 남자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홱 돌았다.
“커헉.”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달을 틈도 없이, 조조의 오른쪽에서 나타난 자가 목을 붙들고 신음을 터트렸다. 벌건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막아보려는 듯 제 목을 붙든 놈이 뒷걸음질치다 바닥에 나자빠진다. 그다음 칼이 공중에 붕 뜨고 다른 손이 재빨리 받는다. 몸을 빠르게 돌려 자세를 낮춘 그가 왼쪽에서 나타난 자의 다리를 베어내고, 중심이 무너진 틈에 얼굴을 틀어쥐어 그대로 벽에 내다 꽂았다. 터엉, 뒷머리를 부딪쳐 앞으로 쓰러진 자의 손에서 총을 주워든다. 장전할 필요 없는 자동 권총이다. 안전장치는 옛적에 풀려있을 테고. 그가 거침없이 뒤를 향해 몇 발을 쏘자 탄피가 튀고 저쪽에서 어흑! 아악! 하고 단말마의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뛰어요!”
남자가 크게 외치며 통로를 향해 턱짓했다. 그래도 되는 건가 주춤거리며 다리를 떼는 사이, 그가 몇 발의 엄호 사격을 하고 총탄이 다 떨어지자 조조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지하 1층의 주차장까지 단숨에 올라가 남자가 총신으로 두들겨 차 유리를 깼다.
“치명상은 아니라서 쫓아올 겁니다. 타요!”
발칵 열린 문으로 조조를 밀어 넣고, 그다음 제가 탄다. 쭉 뻗은 헤드라이트가 주변을 빙 돌아 비췄다. 차를 빼내는 사이 도착한 놈들이 앞을 막아서려고 했지만, 아랑곳 않고 속도를 내는 차에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세워, 새끼야! 외치다 차가 가까워지면 엉거주춤 물러서 버리는 것이었다. 게 중 대담한 사람이 달려 쫓아오기도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차 문을 열지 못하고 점점 멀어져갔다. 팽, 패앵 하고 뒤쪽에 불꽃이 몇 번 튀었다. 조조는 뒷머리를 감싸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수그렸다.
조조를 태운 차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로 솟구치듯 달려 나왔다. 건물 부지를 빠져나오자 더는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깨진 차창으로 바람이 들어와 조조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하아, 하아 숨을 내뱉고 조조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죽을 뻔했다. 아니, 꼼짝없이 여기서 죽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멀쩡히 살아 도로를 달리고 있고, 도심의 텁텁한 매연마저도 달게 느껴졌다. 심호흡해도 가슴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조금 전의 구렁텅이가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다친 곳 하나 없었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만 같다. 조이는 통증을 호소하는 심장과 옆에 이 남자만 빼면 말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현실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도심의 외곽에 다다랐다. 빽빽한 빌딩의 숲 대신 낮은 건물들과 듬성듬성 심어진 가로수들이 시야를 채운다. 달린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그제야 안심이 되어 조조는 아까 이후로 말 한마디 흘리지 않은 남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시선을 느낄 만도 한데, 그는 무감한 얼굴로 운전대만 돌리고 있다. 그의 판판한 뺨과 가파른 콧등 위로 색색이 도심의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이상하다. 어딘가 낯이 익기도 한데,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던가?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원본초가 보내준 사람인가? 아. 그럴 수도 있겠다. 크흠, 헛기침했다.
“저기.”
조조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트리며 입을 열었다.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그쪽 아니었으면 나, 지금쯤 이 세상 사람 아니었을 겁니다.”
“……”
“어지간히 눈엣가시였나 보지. 하긴, 싹 다 쳐 넣겠다고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긴 했나.”
“……”
“나 때문에 곤란하게 된 거 같은데, 내 후하게 사례하겠습니다. 그놈들 여간 독한 게 아니라서 지옥 끝까지 찾아올걸. 당분간 해외에서 몇 년만 몸 숨기고 있으면 그놈들도 잊어버릴 테니까.”
“……”
“아, 이름이라도 알려주시면?”
끼익, 차가 섰다. 인적이 드문 강가였다. 강둑께로 내려가 흙밭에 선 차를 나무 그늘에 가리게 했다. 건너편은 번쩍번쩍한 네온사인으로 빛나고 사람도 꽤 지나다녔지만, 인도가 좁은 이쪽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음?”
“여기서 내리셔야 합니다.”
“아아.”
여기서 헤어지는 건가. 조조가 주위를 살피는 사이 그는 이미 차에서 내리는 중이었다. 뒤따라 내려선 조조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곤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 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여기 있는 전화번호나 메일로 연락 주시죠. 나 그렇게 도의 모르는 사람 아니니 뒷일은 걱정 마시고.”
끔뻑끔뻑 눈을 여닫던 그가 조조의 명함만 내려다보고 섰다. 무슨 생각인지 그러다 조조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다. 재촉하려 흔들어도 보았지만 도통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민 손이 민망해지려 할 때쯤, 그가 손을 뻗어왔다. 명함이 아니라 조조의 손목이 붙들렸다.
“어? 이봐.”
“아직 가야 합니다. 가면서 얘기해요.”
“어디로 가려는 거야?”
그 이상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호등도 없는 도로를 가로질러, 건물과 건물의 사이. 불빛이 흘러나오는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안으로 들어설수록 겉으로 보기보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여댔다.
조조의 눈에는 다른 세상이었다. 유흥가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가게마다 홍등이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렸고 이른 시각에 취객들이 비틀거리며 지나쳐갔다. 목에 금붙이들을 주렁주렁 매단 건달들이 곳곳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인이 어떤 사내의 뺨을 후려쳤고, 있는 힘껏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소란스러운 무리도 있었다. 조조는 침을 삼켜 넘겼다. 거리 전체에서 술 냄새와 찌든 냄새가 풍겼다. 노인들이 머리에 쟁반을 얹고 음식을 나르고, 웃는 사람, 우는 사람, 화를 내는 사람, 실의에 빠진 사람을 한눈에 다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아까보다 더 위험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이 자가 놈들과 한패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을 무턱대고 따라오다니. 평소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무리라면 그런 위험과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을 꾸미지는 않았으리라. 무엇보다도.
가끔 조조의 어깨를 부딪쳐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남자가 어깨를 감싸 제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그러다 반대편에서 서넛 이상의 사람들이 걸어올 때면 팔을 둘러 거의 끌어안은 것처럼 했다. 이런 보호를 받는 판이다. 의심이 피어나기가 무섭게 절로 사그라졌다. 잠시는 믿어 봐도 괜찮겠지 싶다.
몇 차례나 다른 골목을 지나고 좀 더 좁고 음습한 길이 나타났다. 이제 거의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남은 틈이 없는 좁다랗고 어두운 길로 들어섰다. 한동안 불만 없이 따르던 조조는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의 눈동자가 슬쩍 조조를 향해 돈다. 눈이 마주쳤다. 조조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노려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다. 남자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그가 던지듯 말을 꺼냈다.
“형님. 저 인입니다.”
“인, 뭐?”
“쉿. 목소리 낮추시고요. 저 인입니다. 초현의 인이요.”
초현의 인이?
“안전한 곳에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인이. 인이라면… 내가 아는 한에서는.
조조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전등불 밑 어둠 속으로 떠밀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몇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 떠밀려진 그대로 벽에 기대어있는 그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 깊이 눌러썼던 모자를 훽 하고 낚아챘다. 그의 가슴께까지 오는 그림자. 어둠 속에서도 청청한 푸른 눈동자와 단정하게 뻗은 눈썹, 그리고 눈매를 보며 눈을 좁혔다. 어딘가 눈에 익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름을 듣고 다시 보니 그랬다. 아는 얼굴이었다. 조조는 미간을 사정없이 구겼다.
“야 임마!”
그리고 멱살을 틀어쥐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