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서랍장 하나가 전부인 살림살이였다. 이런 데서도 사람이 사는 건가. 하릴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낡아빠진 나무 바닥에, 칠이 다 벗겨진 것도 모자라 거뭇거뭇 때가 묻은 콘크리트 벽. 날짜가 몇 달은 더 지난 신문들이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가 하면, 집 안에 조명이라고는 책상 위에 노란 전구색 전등 하나밖에 없었다. 바닥엔 먼지가 살짝 내려앉아 생활감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여기저기 던져진 옷가지와 잡동사니들 탓에 가뜩이나 작은 방이 더 비좁아 보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 하더라도 불평할 처지는 되지 못했다.
조인은 아까부터 우두커니 책상 앞에 서서 서랍을 열었다가 닫고, 또 열어 무엇인가 찾아 꺼내어 가방 안에 챙겨 넣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영 이상했다. 낯선 풍경, 낯선 냄새. 습한 공기. 그리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기억까지 전부 제가 만들어낸 잘못된 기억이 아닐까 의심하게 하는 낯선 등짝이 거기 있어서다.
“인아.”
“예.”
“이런 곳에서 지냈었냐?”
“잠시 머물러 가는 곳입니다.”
“너 군대에 말뚝 박았다고 하지 않았었어?”
“예. 그랬죠.”
“그럼 지금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휴가라도 나왔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조인이 어린 나이에 발탁되어 군의 좋은 자리로 갔다는 것은 고향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였다. 약간의 훈련을 거치고 장교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어디였더라. 공군? 해군? 어떻게 기억이 안 날 수가 있지. 아무리 정신이 없었대도. 조인은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굳혔다. 이쪽을 쳐다보나 싶었는데, 틀어진 턱선만 보였다.
“비슷합니다.”
웃기지 마라. 휴가 나오면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놀러 나다니지 어느 누가 그런 데에서 기다리는 짓을 하나. 우연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지나치다 아는 사람 만난 수준도 아니고. 조인은 조조가 그리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아마 건물의 상태를 파악하고 나서 적재적소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보다, 조조에게 닥칠 일을 어떻게 알았느냐가 더 의문이었다. 조조는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지. 너 군대 그만뒀지.”
“네.”
“언제부터?”
“두 시간 전에요.”
“……뭐?”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져 입만 벌리고 있는데, 조인이 훌렁 윗옷을 벗어젖혔다.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에 눈이 커졌다.
“너… 피가.”
장골보다 위쪽에, 벌어진 살이 길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검은색 목폴라에 검은색 재킷이라 배어 나오는 붉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던가. 그의 몸짓에 흐트러짐이 없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괜찮습니다. 살짝 스친 것뿐이니까요.”
“살짝 스치기는 무슨. 당장 지혈하고 꿰매야 할 것 같은데. 빨리 병원에…”
조조는 입을 다물었다.
갈 수 없겠군. 아직은. 그 난리를 치고 나왔으니 바깥은 뒤집혔겠지. 죽은 사람도 있었고. 정말로 검찰청 안에서 피를 뿌리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만약 놈들이 아니었으면 피를 뿌리는 것은 조조가 되었을 것이다. 어쩐다…
조인은 가장 아래 서랍에서 플라스틱 상자를 꺼내 열었다. 바늘. 핀셋. 가위. 거즈에 소독약을 콸콸 쏟아 붓고 거침없이 제 살을 꿰어낸다. 봉합된 위에 두껍게 덧대고 반듯하게 붕대를 감는 것까지 신음 하나 내지 않을뿐더러 조금의 지체도 없었다. 상당히 숙련된 솜씨다. 심란하다. 자세히 보니 흉이 많은 몸이다. 피부보다 조금 더 밝은, 허옇게 새 살이 올라온 흉터가 조인의 널따란 등 곳곳에 포진해있었다. 그것까지 본래 자기 것인 양, 일부러 새긴 무늬인 양 어울리는 굴곡이다만, 보지 못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지금은 형님만 생각하세요.”
“여기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차를 발견했을 겁니다. 여기까지 훑어 들어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늦지 않게 떠나야 합니다.”
“인아. 어떡하려고 그래.”
“무얼 말입니까.”
바로 반문한다.
“나야 내 무덤 팠다고 생각하지만, 너까지 휘말려서 어떡하느냐고.”
“형님.”
“아까 말했지. 그 새끼들, 보통 아니다. 한 번 점찍었으면 지옥 끝까지 달라붙을 거다.”
“그걸 알면서 그러셨습니까.”
책망하는 소리에 끄응, 신음만 흘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혼나는 것도 오랜만이라 나쁘지 않았다.
“아직 넌 얼굴 팔리지 않았으니까, 이쯤에서 손 떼는 게 좋아.”
“형님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나야 돌아가 봤자, 바늘꽂이밖에 더 되겠나 싶긴 한데. 따로 갈 곳이 있을 리가.”
깍지 낀 두 손을 입가에 얹으며 결심하듯 말했다.
“끝까지 가야지.”
그래. 끝까지 가야지. 이대로 포기한다는 건 너무 우습잖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휘두를 것이다. 내 세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돌아가서, 당분간 원본초한테 의탁할 생각…”
“죽여 드릴까요?”
말을 다 마치기 전에 급히 끊긴다.
“그놈들 말입니다.”
허. 조조는 입꼬리를 당겨 웃다. 아연하기를 훌쩍 넘어 큭, 웃음이 터졌다. 정말 골 때린다니까. 흘러나온 웃음이 멈출 줄을 몰라 이마를 짚고 어깨만 들썩거렸다. 끄윽, 끅하고 이상한 소리만 목을 울렸다. 오늘 중에 가장 유쾌한 기분이었다.
“아서라, 아서.”
나도 어디 가서 미쳤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이보다 더하진 않았지. 숫자가 적어도 수만. 정체도 알 수 없고 어디에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놈들을 상대로 ‘죽여 주겠다?’ 순진한 건지, 과격한 건지. 하여간 조가 놈들 이상하다는 소리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차피 이쪽이 발각되면 저도 들통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날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형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 너 누구 밑에서 일하는데?”
“형님이요.”
되돌이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지 그러냐.
“군에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부대 이름을 밝힐 수 없을 뿐. 불복하고 두 시간 전에 그만둔 것도 사실이고요.”
“탈영을, 했다고?”
“안 찾을 겁니다.”
하고 만다. 그러니까 설명을 좀 더 자세히… 지끈거리려는 이마를 손끝으로 더듬거리며 짚었다. 하기야 지금은 구구절절 얘기를 듣고 있을 때는 아닌가. 조인은 주방 찬장으로 가, 오래된 과자 상자를 하나 꺼냈다. 얇은 금속으로 만든 그것을 열자 둥그렇게 말아 고무줄로 고정한 지폐뭉치가 여럿 나왔다. 그것을 전부 옮겨 담고 나니 가방이 제법 묵직해졌다.
“이유라고 하면. 있기야 있습니다.”
“뭔데.”
조인의 냉한 시선이 조조에게로 꽂혔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류에 조조는 살짝 당황했다. 그는 그저 말을 고르며 멈춰있을 따름이었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은 물체도, 법도 없는데 한 치의 움직임도 허용되지 않는 듯한 무거운 공기에 짓눌렸다. 손가락 하나 움찔이는 것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뭐.”
“듣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먼저 말을 떼었으니, 조조가 듣고 싶다 하면 그는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조인의 말대로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조의 촉은 그동안 범죄자들과 정치인들을 상대하면서 단련된 것이었다. 이것은 위험신호였다. 한 번 입 밖에 내면 되돌리지 못하리라.
“…… 알았다. 다음에 듣자.”
조인은 입고 있던 옷을 전부 쓰레기 봉지에 처넣고, 평범한 티셔츠에 청바지, 남색 남방 하나를 걸쳤다. 아까와는 다른 검붉은색 야구 모자를 쓰니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조조도 셔츠와 양복 재킷을 벗고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다만 조인의 것이라 조조에게는 많이 커 헐렁거렸다. 그 위에 후드 집업을 걸치고, 여분의 모자가 없어서 그냥 후드를 눌러 썼다.
“이제 가요.”
더플백을 어깨에 걸치고 조인이 앞장서 문을 열었다. 그 뒤를 조조가 바짝 붙으려 했다. 한 발도 채 나가지 않고 가만 동태를 살피던 조인이 다시 조용히 문을 닫는다.
“형님. 뒤로요.”
무엇인가 본 것일까? 조조와 조인은 건물 옆에 설치된 비상계단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잠시 후 그들이 있던 집을 올려다보니 검었던 창문에 불이 들어온 것이 보였다. 조인은 조조의 손을 잡아 큰길로 이끌었다. 일부러 인파에 섞이는 게 더 안전하다고 했다. 과연, 밤이 더 깊어져 유흥가 거리에 사람이 북적였다. 이렇다면 10미터 앞의 사람도 찾기 힘들 것이다.
줄이 길게 늘어선 음식점 앞을 지나는데, 밖에 설치해놓은 텔레비전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금일 오후 일곱 시 경, 조직폭력배 간의 다툼이 검찰청 지하 주차장에서 일어나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사상자는 10여 명에 이르며 경찰은 현재 달아난 조직원들을 수사 선상에 올리고 검거에 총력을…’
“보지 마세요.”
어깨를 움켜잡은 손아귀에 힘이 느껴졌다.
“앞만 보고 걸어요.”
조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떼었다. 이 앞은 전부 가시밭길이건만 감싸온 힘과 손바닥 안의 열기에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는 다시 시작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서. 모래바람만 부는 광야 위를 홀로 걸을 것이다.
실제로 할 수 있었다. 조인은. 조조의 입에서 ‘다 죽여라’ 소리가 나오기만 하면. 이렇게 쫓기는 것보다, 아까의 가옥에서 오는 놈들을 다 죽여버리는 편이 훨씬 쉬웠다.
감정을 죽이는 법을 배웠고 찰나의 틈에 몸을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얻어맞아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는 법과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법도. 모든 전투에서 그 누구보다도 잘 해내도록 단련했다. 힘, 민첩, 정확성, 대처력 어느 하나 떨어지면 안 되었다. 선발된 수천 명의 전사 중에, 또 그 중에서도 특별히 엄선된 스무 명 중에 하나. 높은 곳의 몇몇밖에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국가의 최종 병기.
그동안은 아무렇게나 휘둘러지도록 두었다. 누구에게서 명령이 내려오는 건지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 나이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검지에 잉크를 묻히는 것보다, 두 손 가득 피를 묻히는 것이 일상인 손이었다. 죄책감 같은 것도 없었다. 정치 역학을 다 파악할 수는 없으나,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군인의 소명인 바 나라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옳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그의 소식 때문이었다.
‘그 또라이 새끼가 제남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더라.’
‘당장 중앙으로 불러들여!’
‘이번엔 동탁 뒤통수를 치고 내뺐다면서?’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지?’
’그놈 집안이 글쎄,‘
집으로 돌아와 세면대 앞에 서서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고, 문득 그에 대한 소식을 떠올리면 실실 웃음이 나왔다. 과격하고 거침없는 행보가 답다면 답다고 해야 하나. 물기어린 코끝을 쓸고 웃음을 감췄다. 거울 속에 있는 것은 껍데기의 얼굴이다.
보고 싶었다.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그 옆에 함께 걸을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것을 최대로 해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오늘이 그 새끼 제삿날이라면서?’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목표 이외에 말을 섞거나 접촉이 있으면 안 되었는데. 조인은 귓속의 이어폰을 빼내 구둣발로 으스러트렸다.
“실례지만.”
물론 그런 정보를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쉬이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약간의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쉴틈없이 울리는 휴대전화와 통신기도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모니터 너머로 보고있는 자들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알았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상상조차 불가한 것을. 지금까지 헛짓거리하고 있었다는 걸 단박에 깨달았다. 잃을 뻔했다.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건데.
사람의 물결을 헤치며 지나가는데, 멀리서 소란스러운 음악이 들려왔다. 화약 냄새와 연기도 퍼져 나왔다. 붉은 털을 자랑하는 사자가 왼발, 오른발 들어 제끼며 춤을 췄다. 타닥타닥 불꽃이 이는 폭죽이 거리 한가운데서 몸을 뒤틀어댔다. 보아하니 어느 가게가 새로 문을 연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져 행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조조와 조인도 사람들을 따라 갓길로 물러나왔다.
조인은 손가락 사이사이 파고들어 단단히 손을 맞잡았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조조가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긴장과 피로가 누적되어 초췌해진 눈이다. 한동안 눈을 맞추었다.
“녀석, 참…”
아무래도 다른 뜻으로 오해한 것 같다. 작고 비어 있는 그 손에 한 자루의 칼.
칼자루를 쥐여드리리. 마음껏 쓰시라. 그 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도, 남을 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칼끝이 어디를 향하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 당신이라는 점이다. 누구도 쉽게 범접하지 못하게 내가 그렇게 할 것이다.
행진이 그들의 앞에 당도하고, 불꽃이 더 커다랗게 튀었다. 조인의 손아귀에 일순 힘이 들어찼다.
그러지 않고서는.
조금도 참을 수 없어서.